남는 게 남는 거다. 맞춤양복. 두근두근 기대를 안고
지독한 실리주의답게 결혼준비 중에서 가장 기대하고 방문했던 곳 중의 하나 맞춤양복(결혼식보다 남는 건 양복, 반지 뭐 이런 거라는 생각). 평소에 양복을 입는 직업이기 때문에 두랍왕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두랍왕자는 그냥 결혼식이니 저렴한 걸로 맞추면 된다고 양복 사실 별반 차이 없으니 무조건 싼 걸 외쳤지만 이때 아니면 또 언제 비싸고 좋은 걸 맞춰보겠어) 비싼걸(비싼 게 좋은 거겠죠) 맞춰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방문했던 곳이다. 사전에 플래너님이 두랍왕자의 체형과 스타일을 보고 두 군데를 추천, 예약해 줬는데 그중 뒷타임 예약이 슈트패브릭이었다.
맞춤양복. 생각하시는 것보다 일반인은 더 몰라요...(+ 슈트패브릭을 선택한 이유.)
두 군데를 방문하고 이해한 결과 쉽게 설명하자면,
양복의 퀄과 태는 원단이 어디 거냐에 따라 결정되고
양복이 얼마나 나의 체형에 착불인가 (커스터 마이징 되었는 가)는 제작방식(수미주라/비스포크)에 따라 달라진다.
쉽게 말해 양복에 대해 잘 모른 사람이 양복 입은 사람을 발견했을 때
' 오 저 사람 옷을 맞췄네? 모델 핏이네?'라고 느끼면 제작 방식에서 차이가 나는 거
' 오 저 사람 돈 좀 있어 보이는데?'라고 느끼면 원단의 차이라는 거다.
... 너무 없어 보이는 예시인가.. 암튼..
처음 방문한 곳에서 양복을 맞추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1. 양복에 대한 무지.
너무 처음이라 덜렁 계약하기가 좀 그랬다. 현장 계약으로 셔츠를 3개나 주겠다고 꼬셔서 넘어갈 뻔했지만 사전 지식이 너무 없어서 이 조건이 좋은 조건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됐다.
2. 정보 과잉. 매우 많은 정보가 들어왔으나 결국 머릿속에 남는 건 1도 없었다.
양복에 대해 1도 모르는 나는 당연하고, 일반적으로 양복을 입는 직업을 가진 두랍왕자를 포함한 일반 남성들도 기성복 양복이나 사 와서 교복처럼 돌려 입을 뿐이지 생각보다 양복에 대해 잘 모른다. 오히려 두랍왕자는 평소 양복을 입고 다니는 직업이라 그나마 캐주얼복을 입고 생활하는 남자들 보다는 많이 아는 편이다. 양복집이야 해당 필드에 대해 정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이태리 원단 중에서도 몇 수에 무슨 헤링본 짜임이 있고 영국원단 중에서 상대적으로 라이트 하고 가볍게 나왔다는 둥 이런 정보를 다다다다 나열하면 대충 각이 서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많은 정보를 주면 오히려 머릿속에 점점 더 남는 게 없는 역효과가 난다. 그것도 원단만 보여주고 원단별 옷이 없다면 더더욱!
처음 간 곳은 단순히 국내산/이태리산/영국산 원단으로 만든 양복만 입어보게 시켰으나 막상 원단을 고르자니 전문가들이나 보는 원단북을 꺼내 이탈리아 원단 중에서도 선택지를 4~5가지, 영국 원단 중에서도 비슷하게 꺼내왔다. 이런 원단북을 보고 느끼는 생각은 이건 좀 얇은가? 이건 좀 부드러운가? 이런 느낌뿐이지 이 원단이 양복이 되었을 때 어떻게 구현될지는 감이 전혀 안 생긴다. 따라서 내가 느낀 생각은 전문가니 어느 정도는 고객의 취향을 반영하되, 어느 정도는 전문가인만큼 길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단차이가 어떤 건 줄 알았으면 동대문에서 천을 때와서 만들어달라고 했겠죠....
추가로 이런 원단북을 보여주면서 어떤 게 더 저렴하고 더 비싼지 가격대도 안 알려준다. 대부분의 예비부부들이 그렇듯이 각 단계마다 예산을 들고 선택을 하는데 고객에 대해 더 알아보고 고객에게 맞는 걸 안내해 준다는 것보다는 그건 모르겠고 우리 이렇게 다양한 원단 취급하고 우리 이렇게 멋지답니다. 우리 거 하이앤드에 프리미엄에 블랙라벨라인인데 선택 안 하고는 못 배길걸 이런 느낌이랄까...
3. 제가 아무리 몰라도 이 정도는 알아요.
처음 간 곳에서 신뢰를 결정적으로 잃었던 계기. 원단은 국내산 → 이태리산 → 영국산 순으로 비싸지는 데 원단별 특징이 어떤 건지 느껴보라고 각 원단별 피팅을 도와주셨던 담당자분은 국내산은 두랍왕자의 체형보다 정말 짧은 디자인을, 이태리원단은 그냥 기본 스타일 상의를, 영국원단은 두랍왕자의 체형에 꼭 맞고 스타일이 들어간 상의를 피팅해 주셨다.
이런 식으로 피팅하면 일반인 눈에는 아무래도 원단 차보다는 스타일 차이가 먼저 들어오는데 아무리 영업이 중요해도 이런 식으로 비싼 원단을 유도하는 건 아니다고 생각했다.
워낙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알아봤지만 진짜 무심코 봤으면 아무 저항 없이 영국산 원단을 선택하고 계약했을 거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슈트패브릭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저 3가지에 대한 불편감이 해소되었기 때문이다.
잠깐! 양복 상식
이런 거 저런 거 다 들어본 결과. 물론 양복에 대해 많은 전문지식이 있겠지만 구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래 3가지만 알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스타일을 결정짓는 핏
슬림핏 | 클래식핏 |
체형에 딱 떨어지는 핏 허리와 팔, 다리 부분 여유가 거의 없이 몸에 딱 떨어지도록 디자인 해 체형을 강조 현대적이고 스타일을 강조할 수 있으나 비지니스 상황이나 전문성을 강조 상갓집 방문 등의 상황에서는 맞지 않다. 추천 : 패션계 종사자, 결혼식 때만 정장을 입는 사람. 몸이 좋은 체형 |
체형에 여유를 두는 핏 넉넉한 품을 줘 일상생활에서 생활하기 편하고 비지니스 상황이나 전문성, 신뢰성을 강조, 또 예의를 차려야하는 장소에 방문할 때는 적합한 핏이나 개성을 나타내거나 스타일을 강조하기에는 부족함 추천 : 전문직 종사자, 살이 좀 있는 체형 |
2. 양복의 퀄리티와 태를 결정짓는 원단
● 국내산 원단
약간 인위적인 광택이 돈다.
가성비를 따진다면 국내 원단을 추천
● 이태리 원단
일반적으로 국내산 원단과 영국산 원단의 중간정도
은은한 광택이 돌고 부드러운 느낌이라 슬림핏으로 스타일을 주기에 적정
그러나 옷에 힘이 없어 어느 정도 각을 잡고 잡아주는 느낌은 좀 약한 편
● 영국 원단
촉감은 약간 거친 편
원단에 힘이 있어 선이 살아있다.
세 가지 원단 중 보통 가격이 제일 많이 나간다.
3. 얼마나 내 체형에 맞추느냐, 옷이 얼마나 내게 착붙이냐는 제작 방식
● 수미주라
반수제. 기성복보다 좀 더 촘촘한 간격으로 정형화된 패턴을 이용해 변형하는 방식.
완전 수제방식에 비해 저렴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으나 평균에서 많이 벗어난 체형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 비스포크
각 신체마다 치수를 측정해 한 사람만의 양복을 제작하는 방식.
몸의 체형에 맞추어 재단하여 양복을 제작하는 방식. 전 과정을 손바느질로 제작한다.
4. 기타 : 투피스 이냐 쓰리피스 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투피스 VS 쓰리피스
- 투피스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장. 양복 상의와 하의만으로 구성됨. 움직임에 제약이 적다.
- 쓰리피스는 투피스에 조끼가 추가. 더 공식적인 자리에 적합하나 쓰리피스를 입으면 양복 상의를 벗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
자 지금부터 슈트패브릭 후기 들어갑니다.
첫 번째 맞춤양복집에서 기가 다 빨려서 눈이 반쯤 풀린 채로 들어간 슈트패브릭. 첫 번째와 두 번째 예약 간 시간이 꽤나 넉넉해 로비에 있는 소파에서 눈이 반쯤 풀린 채로 널브러져 창문너머로 열심히 옷을 만들고 계시는 분들을 꿈뻑꿈뻑거리며 기다리고 있었더니 보다 못한 두랍왕자가 근처 카페에 들렀다 오자고 끌고 나갔다. 내 눈이 그렇게나 풀렸니...
긴급 카페인 처방을 받고 다시 돌아오니 예약시간이 다가와 바로 1인룸으로 안내받았다. 상담이전에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고 부대표님을 안내받았다. 이전에 다녀온 업체가 있냐고 물어보셔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그럼 양복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이 생겼겠네요? 하셔서 질린 표정으로 저희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원단차이도 모르겠어요. 했더니 원단부터 시작하자고 하셨다.
두랍왕자를 앞으로 안내해 피팅을 도와주셨는데 똑같은 색,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차례로 입혀주시면서 차이를 설명해 주셨다. 여기서부터 신뢰도 업! 각각 입을 때마다 상의에 어울리지 않는 바지를 커다란 판으로 가려주셔서 조금 더 몰입이 됐다. 일반인 눈에 커다란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약간의 디테일차이가 있긴 했다. 부대표님이 국내 원단과 이태리 원단이 가격차이가 나지 않으니 이왕이면 이태리 이상을 하는 대신 영국원단이냐 이태리 원단이냐는 일반인 눈에는 크게 차이 안 날 수 있다고 솔직히 말씀해 주셔서 고민 끝에 여러모로 영국 원단이 나을 것 같아 영국원단으로 선택!
비스포크냐 수미주라방식이냐를 선택하는 단계에서는 부대표님이 영국원단 다시 이태리로 가격 내려도 되니까 이왕 맞춤으로 하는 거 제발 비스포크로 하라고 만들고 나면 다르다고 부대표님 본인 양복을 꺼내셔서 비스포크 방식, 수미주라 방식 상의를 입은 걸 보여주셨다. 비스포크 방식은 체형에 딱 맞게 만들어져서 무게가 분산되기 때문에 입었을 때 무게도 다를 거라고 두랍왕자는 물론 나까지 번갈아가며 피팅하며 체험해 봤다. 나랑 부대표님은 체형도 다른데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입었을 때는 수미주라가 더 무겁게 느껴졌던 반면 실제로 손가락으로 걸어 무게를 비교해 보니 비스포크 상의가 훨씬 무거웠다. 신기신기. 근데 나는 슈트패브릭을 방문하기 전에 이전 양복집에서부터 비스포크를 내심 결정하고 있어서 내 결정에 근거를 더하는 단계였다고나 할까 ㅎㅎㅎ
양복 색상도 정했는데 우리는 미리부터 두랍왕자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입고 다닐 걸 생각해서 네이비 색상을 정해두고 갔는데, 부대표님께서는 다른 의견을 주셨다. 검은색 양복이 흰색인 신부드레스와 완벽히 대비되어 더 격식 있어 보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셔츠에 포인트를 주면 일상에서도 검은색 양복을 입고 다닐 수 있다며, 원 목적이 결혼식인 만큼 검은색을 추천해주고 싶다고 했다. 다시 두랍왕자를 피팅시켜 주시며 차이를 열심히 설명해 주셨는데, 입은걸 보고 스스로 납득하기도 했고, 가격차이가 나지 않는 원단 색상 정하는데 열정적으로 의견을 주시는 데에 굉장히 전문가 같은 신뢰감도 생겼다.
그다음 부대표님과 의견이 갈렸던 부분이 투피스냐 쓰리피스냐인데 부대표님은 강력히 쓰리피스가 좋다 주장. 나는 조끼입은 패션을 일종의 패션 무덤이라 생각했던 터라 강력하게 투피스를 주장했다. 사진까지 보여주시면서 돈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니라 평소에 맨날 투피스 입고 다니는데 결혼식 하객이랑 차별점을 얻을 수 있고 더 격식 있는 차림새이며 스타일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열정적으로 설명하셨다. 대신 절대로 양복 상의는 벗지 말라며, 예비 신부가 싫어할 거라는 충고를 해주시던 부대표님의 말에 뭐.. 상의만 입고 있는다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조끼까지 데리고 오기로ㅎㅎ
다음 웨딩 패키지답게 대여복과 추가 구성품에 대한 일종의 딜을 끝냈다ㅎㅎ 슈트패브릭 잘해주더라고요ㅎㅎㅎ 그리고 슈트패브릭은 대여복이 굉장히 전문적이고 큰 규모로 준비되어 있다. 대여복만 쭉 전시되어 있는 건물이 따로 있을 정도. 스튜디오 촬영 때 필요한 옷들이 기성복 보다 더 세세한 치수단위로 준비되어 있고 여성 대여복도 준비되어 있어 신랑 대여복을 고르러 왔다가 2부 예식 드레스도 많이들 대여해 간다고 하셨다.
마지막에는 전문 재단사 선생님께서 두랍왕자의 온몸을 치수로 재어가셨다. 부대표님과 숫자만으로 대화하셨는데 왕 전문가의 포스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가봉 날짜가 넘나 기대된다.ㅎㅎ
조금 더 디테일하게 담당자님을 신뢰했던 이유.
1. 나만큼이나 질문이 많으셨다. 고로 우리에게 맞는 양복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셨다는 거
2. 아닌 건 아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전문가
3. 비스포크 제발하세요. 영국 원단 이태리로 내리고 비스포크 하세요.
4. 똑같은 사이즈 똑같은 색상 똑같은 디자인에 원단만 다른 피팅
5. 말만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나까지도 피팅에 참여시키거나 사진을 제시하면서 설명해 주시는 등 근거를 제시해 주셔서 납득 완료.
내가 슈트패브릭을 좀 더 정확하게 부대표님을 신뢰한 이유는 위에 구구절절 써 놓았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내가 느낀 부대표님은 양복 영업자가 아닌 전문가라는 것
양복을 파는데 집중하지 않고 잘 모르는 우리에게 근거를 들어 설명해 주시면서 두랍왕자에게 가장 맞는 양복을 소개해주려고 하셨다는 것! 부대표님과 상담을 받으면서 맞춤양복은 단순히 신체에 맞춘 양복이 아닌 평소 스타일, 업무 시간, 구입 목적에도 맞추는 게 맞춤양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ㅎㅎㅎ 돈 쓰면서 앞으로 두랍왕자가 입을 옷을 생각하니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가봉날짜 언제 오나 ㅎㅎ
'3. 기타 등등의 일상 > 3.1 웨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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